경주 문화재 불국사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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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5. 20.
경주 문화재 불국사 석굴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여행의 묘미는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고 알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경주여행하면 떠오르는 유적지와 유물은 실로 많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 천마총, 석굴암, 불국사, 감은사지 석탑, 문무대왕릉, 양동마을, 이견대, 석가탑, 분황사 등이 있다. '천년고도'는 경주를 부르는 말이다.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운 후부터 935년 신라가 망할 때까지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지였다. 그래서 신라를 천년고도라고 부른다. 천 년 동안 한 나라의 도읍이 바뀌지 않은 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이다. 때문에 경주는 우리 역사에서도 매우 귀중한 문화유적지이다.
'구름을 삼키고 토하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경주 토암산은 통일 신라 최고의 걸작이 있는 장소이다. 바로 부처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불국사가 있다. 불국사는 통일 신라 경덕왕 때 재상을 하고 있던 김대성이 석굴암과 함께 지었다. '불국사고금창기'라는 고문서가 있는데 이 기록을 살펴보면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였던 영제 부인의 청으로 불국사가 지어졌다고 나온다. 751년에 김대성이 불국사를 다시 지으면서 탑과 돌다리 등을 추가로 만들었다. 물론 다른 설도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하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불국사에는 불교의 교리를 증명하는 다보탑과 불국사 3층 석탑이 있다.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높이는 10.4미터, 기단 폭은 4.4미터에 이른다. 다보탑은 독특한 형식으로 세워져있어 층을 셀 수 없다. 그래서 이름이 다보탑인걸까? 층을 셀 수 없도록 독특한 형식으로 만든 이유는 성스러운 곳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불국사 3층석탑이 있는에 이를 석가탑이라고 부른다. 1966년에 불국사 3층 석탑을 해체한 뒤 복원하였는데 이때 탑속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고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놀라게 만든 사건이었다. 다보탑이 국보 제 20호라면 석가탑은 국보 제 21호로 높이는 8.2미터이다.
경주 문화재 불국사 석굴암
신라의 건축 지혜가 녹아있는 석굴암은 경주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에는 예로부터 화강암이 많았다. 이렇게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서 쌓아 만든 것이 석굴암이다. 이 석굴암은 동해를 바라보고 있어서 해가 떠오를 때 빛을 받으면 아주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석굴암 안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상은 거친 화강암으로 만들었음에도 얼굴, 어깨, 팔, 다리 모두 부드러운 곡선을 뽐낸다. 신라인들의 석공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석굴암 본존불상은 국보 제 24호로 높이 3.26미터, 높이는 16미터에 이른다.
석굴암에는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10명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으며 위에는 십일면관음보살이 조각되어 있고 예술적 솜씨가 매우 놀랍다. 일제 강점기에 우연히 석굴암을 발견한 일본인들은 석굴암의 모습에 놀랐다. 내부의 습도가 저절로 조절되고 빛이 본졸불상의 이마를 비추게 되면 사방으로 빛이 퍼지는 과학적 원리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인들은 이것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려가려고 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석굴암의 일부에 시멘트를 칠하고 만다. 무려 천년이나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하면서 신라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던 석굴암은 일본인들의 무례한 행동으로 손상되기 시작했다. 습기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서 이끼가 끼기도 했다.
경주 여행 중 경주 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경주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므로 아이와 함께하는 경주 여행이라면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다. 경주 박물관에는 무덤과 그 주변에서 발군된 유물, 신라 왕궁이었던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신라의 불료, 미술작품 등 약 21만여 점의 유물과 문화재가 보관되고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놓칠 수 없는 것은 금관총 금관으로 국보 제87호이다. 금관총 금관은 신라 5세기 무렵의 금관으로 경주 노서동 금관총에서 출토되었다. 당시 왕은 백성들 앞에 나설 때 비취옥과 나뭇잎 모양의 장식으로 꾸며진 금관, 금 허리띠 등을 착용하였다.
경주 문화재 불국사 석굴암
경주 박물관 입구에는 성덕대왕 신종이 있다. 이는 국보 제 29호로 높이는 3.75미터, 밑 지금은 2.27미터, 두께는 11 ~ 25cm, 무게는 약 18.9톤에 이른다. 신라를 대표하는 종인 성덕 대왕 신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이다. 처음에는 봉덕사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 불렀다. 아기를 시주해서 넣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래서 종을 칠 때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하여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을 만들게 된 과정이 종의 겉면에 적혀있고 중간에는 연꽃을 바치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종소리가 깊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원효대사의 발자취가 있는 분황사도 있다. 분황사의 뜻은 향기 나는 황제의 절이다. 신라 최소의 여왕이었던 선덕 여왕을 위해서 634년에 지은 절이다.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모전탑이 남아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또한 원효 대사가 머물렀던 절이기도 하다. 원효 대사는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썼고 역사에서는 그를 불교 대중화의 주역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원효대사는 이곳 분황사에서 불교 해설서를 꽤 여러 권 썼다. 안타깝게도 분황사의 유물은 몽골의 침략과 임진왜란으로 많이 사라진 상태다.
얼마나 넓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황룡사지! 경주 여행의 꽃이다. 황룡사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절터로 사적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이 553년에 월성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게 했고 그 곳에 황룡이 나타나자 사찰로 고쳐서 짓도록 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황룡이 나타났다고 하여 황룡사기를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645년 드디어 신라의 3가지 보배라고 불리는 황룡사 9층 목탑이 조성되었다. 백제의 장인이었던 아비지를 초청하여서 세웠고 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탑은 1238년 몽골의 침략으로 황룡사의 전체가 불타버리면서 터만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발굴되기 전까지 경주에 사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뒷동산 정도로 여겼지만 그곳은 왕의 무덤이었다. 신라의 왕과 왕비, 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있는 이곳을 대릉원이라고 부른다. 대릉원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동산이 모여있는 모습에 가깝다. 천마총은 신라의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 곳이다. 대릉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첨성대도 있다. 대릉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이며 고분은 23기이다. 이 천 년 가까이 무덤이 그대로 있다니 실로 놀랍다.
경주 문화재 불국사 석굴암
신라의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불리는 안압지도 있다. 현재는 명칭을 변경해서 동궁과 월지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신라의 궁 안에는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다양한 동식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월지는 궁을 만들 때 판 연못으로 과거 방치되었을 당시 기러기와 오리 떼가 논다고 해서 안압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궁과 월지는 별궁에 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지 안에는 크고 작은 3개의 인공 섬이 있으며 이 안에서도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궁과 월지는 경주 여행 하는 사람들에게 야경사진찍기 좋은 곳, 밤에 가볼만한곳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동궁과 월지는 밤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천 년 동안이라 신라의 도읍이었던 천년고도 경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1박 2일보다는 2박 3일 정도의 경주여행 이라야 어느 정도 둘러보고 갈 수 있다. 경주 여행은 사계절 내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