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시모음 장마 수국 인사말
- 마음 건강 & 루틴
- 2026. 5. 26.
6월의 시모음 장마 수국 인사말
6월은 아직 여름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 뜨겁고, 봄이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계절입니다. 장마가 오기 전 팽팽하게 당겨진 하늘 아래, 수국은 소리 없이 물을 머금고 피어나고 바람은 온통 풀냄새와 꽃향기로 가득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도, 혼자 조용히 걷기에도 더없이 좋은 이 계절에 시인들은 저마다의 6월을 꺼내 놓았습니다.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맑아져라, 밝아져라" 말을 건네는 장미처럼, 갈 바를 모르고 흔들리면서도 끝내 하루를 견뎌내는 마음처럼 — 6월의 시들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있습니다.

수국을 보며 — 이해인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6월 하루 종일 — 김용택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바람은 불어 나뭇잎을 흔들고
내 마음은 흔들려 갈 바를 모릅니다
내가 당신을 이토록 생각하는 줄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6월의 푸른 숲에서 뻐꾸기는 울고
내 마음은 갈 데 없는 밤을 맞이합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하루해가 짧기만 합니다

6월 바람 — 오세영
6월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푸른 잎사귀들은 하늘을 가리고
발밑에 밟히는 것은 온통 초록의 그림자뿐
그대에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마음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아, 유월의 바람은 너무도 뜨거워
내 가슴속에 숨은 눈물마저 말려버리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만
길 없는 내 마음에 깊은 골짜기를 만듭니다.

장마 전야
유월의 하늘은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
눅눅한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뜨거운 여름 뒤에 올 거대한 슬픔의 무게를
구름은 자꾸만 낮게 내려앉아 지붕을 누르고
들판의 풀들은 숨을 죽인 채 다가올 폭우를 기다린다
지나온 시간의 가뭄을 끝내줄 빗줄기겠지만
그것이 가져올 마음의 범람이 두려워지는 밤
창문을 걸어 잠그고 촛불을 켠다
유월의 마지막 밤을 채우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에 숨어
내일 아침 시작될 거대한 계절의 강을 준비한다

6월엔 내가 — 이해인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가지 끝에 고인 햇빛이 음악으로 흐르는 달
6월엔 내가 지치지 않는 초록의 기도가 되어
너의 가슴에 숲으로 가고 싶다

기껏
큰맘 먹고
세차했더니
기가 막히게
쏟아지네
— 야속한 일기예보
피어 있을 땐
세상 화려하고
탐스럽더니
질 때 되니까
웬 시든 배춧잎이
마당에 가득하네
— 수국 엔딩

해마다 유월이면 — 최승자
해마다 유월이면 당신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내일 열겠다고, 내일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
닫고, 또 닫고 또 닫으면서 뒷걸음질치는
그 짬과 짬 사이에 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 아래 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 싶습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들을 잠재우고
내 안의 낡은 상처들이 초록색으로 덧나는 시간
아무것도 묻지 않는 유월의 숲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이름을 잊어버립니다
살아온 날들이 다 허무의 기록일지라도
이 계절의 푸른 숨결이 내 이마를 짚어줄 때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힘을 얻나니
해마다 유월이 오면 나는 당신에게로 가겠습니다.

토양에 따라
수국색이 바뀐다니
참 신비롭다 했는데
내 마음 바뀔 때보다
빠르진 않더라
— 유월의 변덕

6월의 달력 — 목필균
달력 한 장 들추어내니
초록 속으로 숨어버린 오월
어느새 다가와 앉은 유월은
빨간 장미 넝쿨 속에서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고 웃는다
햇살은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대지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데
모내기 끝낸 논배미마다
파란 하늘이 물에 빠져 누워 있다
해야 할 일들은 태산 같은데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만 가고
유월의 달력 위에 덩그러니 남은
초록색 그리움 하나가 눈에 밟힌다

유월의 링크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웅덩이를 피하듯
유월의 날씨 속을 걸어간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고도
프로필 사진의 초록색 창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달
긴 장마가 오기 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오고 가는 짧은 문장들이
서로의 마음에 작은 징검다리를 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정서가 있어서
우리는 이 뜨거운 계절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유월의 어느 날, 내가 보낸 링크 하나가
너의 지친 하루에 시원한 바람이 되기를 바라며


신록 — 조지훈
온 천지가 푸른 물결이라
눈을 감아도 푸른빛이 가슴에 흐르네
유월의 깊은 산속에서
홀로 씻는 마음의 때여
물소리는 가슴을 뚫고 흐르고
새소리는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나니
세상의 명리와 번잡한 욕심들이
이 푸른 그늘 속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안개 같아라
나무들아, 내 부끄러운 손을 잡아다오
너희들의 곧고 푸른 기상을 내게 나누어다오
유월의 깊은 녹음 속에 온몸을 묻고
나는 오늘 밤 새로이 깨어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려네


6월의 구름
하늘에 뜬 유월의 구름은
양떼처럼 순하고 보드랍다
뜨거운 대지 위를 걸어가는
지친 이들의 머리 위에 잠시 그늘을 드리워주는 평화
바람의 손길을 따라 모양을 바꾸며
구름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그 무소유의 걸음걸이가 너무도 아름다워
바라보는 내 마음의 무거운 짐들도 함께 가벼워진다
대지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삶은 고단할지라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다면
유월의 구름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부드러운 그늘막이 되어줄 것이다


6월의 인사말
유월 소묘 — 정호승
장미가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여름은 장미의 무덤 위에서 푸르러지나니
떨어진 꽃잎을 밟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마다
붉은 향기가 배어난다
눈물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흘린 눈물도 유월의 햇살 아래서는
눈부신 이슬로 다시 피어나나니
지나간 상처를 자꾸만 뒤돌아보지 말라
장미가 진 자리에 푸른 열매가 맺히듯
우리의 슬픔 뒤에도 더 깊은 삶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나니
유월의 들판에 서서 지는 장미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네자


6월의 녹음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초록 주단 넘실대고
산도 들도 모두 푸른 물가에 앉아
나무들은 제 그림자를 물속에 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소음들이 녹음 속에 갇혀
낮게 낮게 소곤거리는 유월의 오후
이 고요한 평화의 중심에서
나는 한 점 섬이 되어 떠 있고 싶다
아무도 찾지 않는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유월의 녹음만을 온전히 호흡하고 싶다

6월에는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지나온 날들의 거친 숨소리를 가라앉히고
숲이 가르쳐주는 침묵의 언어를 배우자
푸른 잎사귀들이 서로의 몸을 부비며 내는 소리
그 부드러운 위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자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도 당당한 나무들처럼
우리도 6월에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세상의 모든 초록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한 그루 푸른 나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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